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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날적에 
마산학생 일기번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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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사월날적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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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4.19 혁명기록물 중
'마산 학생의 일기'를 쉬운 한글로 번역하고,
나아가 영문 번역​을 통하여 내국인·외국인 모두를 대상으로  
4.19 혁명의 의의와 그 가치, 
그리고 4.19 혁명기록물에 대하여 홍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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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project Team Sawolnaljeo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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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ranslate the 'Diary of a Masan Student'
on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cords of 4.19 Revolution—into plain Korean, and further into English,
so that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audiences may gain access. Through this effort, we aim to promote the significance and values of the 4.19 Revolution, 
as well as raise awareness of its documentary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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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업은 복권기금으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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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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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그 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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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날적에’는 4.19 혁명의 전후를 살아낸 이들의 기록, 특히 일기라는 형식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번역하고 전파하고자 결성된 팀입니다. 
팀명에서 ‘사월’은 4.19 혁명을 상징하며, ‘날적이’는 ‘일기’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사적인 기록 속 진실한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옛날 옛적에’를 연상시키는 친숙한 어감을 더해, 팀명 ‘사월날적에’는 4.19 혁명의 기억과 공감, 기록의 따뜻한 연결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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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날적에'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 작업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일기처럼 개인의 시선으로 쓰인 문서들은 공식 역사에서 가려졌던 감정과 경험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자료입니다. 
저희는 4.19 혁명 당시 남겨진 일기 기록물들을 번역, 재해석하여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의 감정과 일상을 함께 호흡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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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혼용체 번역
Korean-Chinese mixed script translation

현대에 들어 거의 사장된 국한문혼용체로 작성되어 있는 '마산지역 학생일기'를 21세기의 우리말로 번역합니다.


We translate the 'Masan Student Diary' originally written in a Korean-Chinese mixed script that has largely fallen out of use in modern times, into the contemporary Korean language of the 21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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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번역
English translation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4.19혁명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전문을 영어로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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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order to promote the meaning and historical value of the 4.19 Revolution- regarded as the beginning of democracy in the Republic of Korea- to the global community, we provide a full 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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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활동
promotional activities

번역뿐만이 아닌, 온라인 및 오프라인 홍보 활동을 통하여 4월의 일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
In addition to translation, we share the stories of The April Diary with a wide audience through both online and offline promotional activities.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전문 中 -

4월 혁명에 대하여

4.19 타임라인
1952
01
직선제 개헌안 부결
05
부산 정치파동: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 야당의원 체포 및 구금
07
발췌개헌
1954
11
4사5입(四捨五入)개헌
"헌법개정의 의결은 양원에서 각각 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써 한다."
-1952년 대한민국헌법 9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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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02
28일 대구학생의거
정부와 여당의 부당한 선거개입에 항의하며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벌인 학생시위
03
3.15 부정선거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가 자행되었던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선거
​
3.15 마산의거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월 15일 마산 시민이 일으킨 시위
04
11일 김주열 학생 시신 발견
김주열 학생, 1960년 3·15부정선거에 반대하는 마산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희생
​
18일 고대 학생 시위 및 피습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3.15부정선거와 김주열 피살에 분노하며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한 시위
​
19일 '피의 화요일'사건
         4.19 혁명 발발
​
23일 대학 교수단 시위
4월 19일 시위에서 고등학생을 비롯해 대학생들이 많이 희생당하자 
각 대학 교수들이 시국수습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벌인 시위
1960. 04. 26
26일 '승리의 화요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활동 내역

TEAM 사월날적에의 활동
국한문혼용체 한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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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일기 (1) 3.13~3.19
3월의 일기 (2) 3.20~3.26
3월의 일기 (3) 3. 27~3.31
4월의 일기 (1) 4.1~4.7
4월의 일기 (2) 4.8~4.14
4월의 일기 (3) 4.15~4.21
4월의 일기 (4) 4.22~4.30
English translation(준비중)
3월 1주차
3월 2주차
3월 3주차
4월 1주차
4월 2주차
4월 3주차
4월 4주차
홍보활동
인스타그램
블로그
일기 단행본 펀딩(준비중)
일기 굿즈 펀딩(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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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지역 학생일기



3월 13일 일요일. 개임

최근들어 종래의 학교의 모든 일들을 겪고, 사회로 진출하게 될 나를 상상해 보다가 사회의 거센 파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사회인이 되기 위한 나의 인격 완성! 이 모든 만반의 준비를 행동면에서나 정신면에서나 어느 면에서라도 나의 학창시절을 통해 꾸준히 배우고 뼈저리게 학업에 열중하여 나의 인생을 대하는 데에 있어 후회없는 생활을 가다듬어야 하리라 믿고 모든 준비를 할 것을 여기 몰래 적어둔다. 남이 뭐라 해도 지금은 실력이 최고니까? 머지않아 새학기와 학기말고사도 있거니와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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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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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하는 날이라 해서 책보를 들고 나왔지만 각중으로 전화로 휴일이라고! 모두들 9시차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차에서 부산에서 오는 광일이를 만났는데 미진 회사에 취직한 모양이다!(월비 6000)! 바다도 모르고 자라고 흰 옷을 좋아하는 이 지방 사람들이 야당의 벽보를 전봇대 상봉에 붙이고 있는 모양과 까마득한 산꼭대기에 있는 바윗장에 벽보를 붙여 놓고 있는 광경으로밖에 안 보였다. 학생들에게 “야간통행금지” 아닌 “주간통행금지”까지 시켜놓고! 왜들 이러노! 미친 경찰놈들아! 오후 길호로부터 편지가 왔기에 답장을 보냈다. 숙모께서 암탉도 가져왔고! 놀라운 소식, 이형구가 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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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5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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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시부터 정부통령 투표다. 운명의 날이 드디어 왔다. 오늘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투표로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운명의 날”이라고 안 할 수 없는 것은 민의와 배치한 부정, 협잡, 폭력선거 때문이 아니냐? 자유당은 ‘선거 비밀 지령’을 부인하고 있지만 야당 측 참관인들은 등록도 못하도록 방해하는 놈들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부통령이 되는지는 국민들의 대단한 관심은 아닐 듯 싶으며 부정선거, 협잡선거, 폭력선거가 강행되고 있다는 것과 부정, 협잡, 폭력을 선거로부터 몰아내는 데에 국민들의 관심의 원천이 있을 것이다. 부정, 협잡, 폭력에 가득 찬 선거는 흰통, 검은통 선거에 지배받고, 그런 선거를 하기 위하여 거액의 돈을 쓰고 관공리와 백성들을 못살게 볶아가면서, 심지어 사람까지 죽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학생까지 정치도구물에 넣게 해 문초를 하고 협박을 하고!! 이따위 선거를 할 바에야 선거는 아주 집어치우라 이놈들아– 고향에서 저녁에 손님이 오셨다.(새실에 가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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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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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시험인데 마산에 가니 지난 저녁에 전 시민의 소요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요사건으로 인해 사망! 부상! 말할 수 없었다. 물론 학교에 등교했지만 우리는 흥분된 마음에 시험은 커녕! 백지 동맹으로 하여 데모를 의논했다. 그러나 경찰 배치와 학교에서 나는 소리로 인해 우리의 정열은 삭아졌다. 북마산 파출소가 다 타버리고 3개의 파출소와 시청, 남전, 서울지국 등등은 모두 파손되었다. 더구나 허씨 집을 습격하여 파손을 가했다는 일들! 아니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싶었던 욕망을 어떻게 억제하겠단 말인가? 민족을 위해 싸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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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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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같이 신문을 보면 과히 혼탁한 사회! 말이 아니다. 세상이 어찌 이다지도 소연한지 정말 내가 구구절절 말을 안 해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마산 사건으로 오늘부터 20일까지 휴일이지만 이로 인해 시끄러운 공기는 더욱 뜨겁다. 선거 기간보다도 선거가 끝난 이날이 더 열심이다. 야당민의원 모두가 국회에서 선거 무효 선언을 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국회 보이콧을 할 기세이니! 오죽 답답했으면 50여명의 민주당원이 선거 부정을 낭독하며 장내를 퇴장하는 데모를 하겠는가? 이 썩은 관리들아, 아니 자유당원들아 민족을 위해 반성하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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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금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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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실”에서 손님이 오셨다.(고향에 가신다고!) 정말 시끄러운 세상! 싸우고 싶었다. 결국 정의는 이기며 부정은 패망하는 법이니까! 이웃에 신문(동아일보)을 보러 갔다. 3시 차로 두 할머님께서 평촌에 가신다기에 표를 타서 역에 나갔다. 숙모께서 오셨는데 숙부꼐서 병석에 계신다기에 심부름 겸 동촌에 갔다.(약 때문에 어머님 약과 개를 잡으라고 현금 3000) 오는 길에 영무 집에 갔다.(전에 용수로부터 받을 화학책(유기무기)을 찾으려고!) 집에 오니 아직도 일을 끝내지 못하신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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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토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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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에 나간다고 밥을 먹고 나자 문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기에 나오니 평촌에 사는 송변이가 찾아왔다. 마산에 볼 일로 간다고 하여 부탁(편지)을 전했다. 백기 형의 부탁을 내가 갖고있었던 고로!! 학교는 휴일이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새학기(3년용) 교과서 금액 6000환을 받았다. 칠원 친우에게 편지를 썼다. 졸업한 준수가 놀러 왔다가 저녁에 갔다.(자진도 주고!) 반기 집에 가서 이번 보리 비료(3승)를 타 왔다. 춘궁기에 고생하는 사람에게 쌀을 빌려준다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봄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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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일요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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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때에도 일제 경찰은 총질은 커녕 칼질도 안했다는데(물론 3.1 운동 때 무수한 학살을 당했지만) 독립된 민주대한이 같은 피를 받은 배달 민족국가! 이번 마산사건에 가담했다고 청소년 학생에게 총을 쏘아야 옳단 말인가?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는 대한의 충실한 관리요 총탄을 맞은 놈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신문 보도에 의하면 무장도 갖추지 않고 맨손으로 일어난 민중의 데모인데 총을 쏘지 않고서는 방지할 도리가 없었더란 말인가 경찰놈들아! 그렇게 국가의 안전을 보장했느냐? 일제 경찰도 감히 죽이지 못할 우리 학우를 죽이다니! 국가와 민족을 망각한 무리들아 나라가 망해도 너희들은 각성하지 않으려는가? 어서 반성을 하라! 나라가 망했다고 하늘도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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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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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등교일이다. 여지껏 데모 사건으로 인해 10일간이나 휴일이었던 것이다. 이제 과거는 전부 씻어 버리고 깨끗한 몸에서 공부를 계속해야 겠다. 학기말 시험에서 일문법, 공민, 고어, 대수, 현대문을 봤다. 그러나 마산에 와 보니 아직 사건의 공기는 가시기 전! 음울한 순간들이다. 2시 차로 집에 왔더니 봉남에서 자형이 오셨다. 참 오래간만이다. 반가웠다. 광주에 계시는 외삼촌님으로부터 편지도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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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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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흔 일곱밖에 되지 않은 아버님이 작년과 올해 동안에 육십이 훨씬 더 넘어 보이도록 흰머리가 많아지고 눈에 띠게 허리조차 제대로 제대로 못 펴시고 말씀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원인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안다. 논이 10마지나 되는 나의 집이지만 뼈만 남으신 아버지다. 물론 뼈만 남으신 아버님은 나를 어떻게 하더라도 좀 더 공부를 시키려고 남보다 먼저 일어나셨고 밤늦게 일자리를 떠나야 할 운명처럼 부지런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를 공부를 중지해? 중지할 수 밖에 없어!! 하여간 지금까지 내가 공부를 계속 한 것만도 무리였어! 많은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아버님이 더 늙으셨으니. 내 학비 때문에! 공부를 그만둔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졸업장을 가진 사람도 취직을 못해 쩔쩔 매는 세상에? 그러면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면? 병석에 계신 어머님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할 수밖에! 그러나 졸업도 하지 못한 나에게 시집을 올까? 올까?! 안 온다면 그 뿐이지, 그런 허영심을 가진 정순이라면 나도 귀찮으니까? 나도 허영심에서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알고 싶고 보다 더 배우고 싶어서 학교에 다녔지, 졸업장을 받으려고 공부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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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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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시험이다.(화학, 문법, 세계사, 독일어, 음악, 국문학사) 아! 그렇게도 골치가 아프던가! 결과적으로는 우스웠다. 하루에 6시간이나! 어제는 상남 할머니께 갔는데 오늘은 선창가 상점에 갔다. 할머님꼐서 사주시는 떡을 먹고 윤근이네 집에 왔다. 저녁 막차로 오군과 오면서 차간에서 함안의 안 형사를 만났다. 과거에 나 때문에(나의 사건에 대해) 얼마나 수고하셨던 분이냐! 이번 휴일(28일 등교를 기약하여 놀러 오라고 한 오군! 이제 그도 자취를 하게 되었다. 집으로 오면서 이웃 영자로부터 듣는 춘자의 안부! 저녁에 외삼촌님의 답변을 썼다.(광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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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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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라 밖에 나왔다. 면소에 가서 충석의 호적초본(금년도 국민학교 입학자)을 떼고 우표를 부쳤다. 준수 집에 놀러 갔다. 그도 졸업을 한 탓인지 몹시 우울한 모양이다. 오래도록 놀다가 올 때에 대학입시책을 가져왔다. 자기도 공부하려고 절로 찾아가고 싶었던 모양!? 저녁에 재유 집에 놀러 갔더니 이미 친우도 와 있었다. 내일이 중회 총회라고 출석하라는 통지!! 집에 올 적에 신문을 가지고 왔다. 아마 철권이도 마산에 있을 것인데! 총회에 갈까(여행비 200)? 함안으로 놀러갈까? 송형도 보고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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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금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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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 속에 새로운 그리움이 하나 있다. 한 사내의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고 한 사랑이 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바칠 수 있었던 그 사랑이 순간적이었다고 믿으면 허물어지는 쓰라림을 나는 잘 안다. 능히 그 아픔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또 부풀어 오르는 하나의 감정에 대해서도 나는 나의 생각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허무를 느낀다. 능히 이기고 이길 수 있는 작은 감정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의식을 지배하는 큰 사랑도 있을 것이고! 이래서 나는 후에 감정에 지배될 걱정과 두려움보다 그리움을 절실히 느낀다. 이러한 아픔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이유 없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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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토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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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나는 어느 회사에 취직하러 간 꿈을 꾸었다. 아침에 책상 앞에서 무한히 생각했다. 나의 이 철없는 생각이 꿈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펴지도 못해서 맨자리에 누워서 꿈만은 그렇게도 편한 길로 달려가는 나의 생각이 어찌 애처롭지 않겠던가? 나에겐 편한 길도 반갑지 않았다. 어쩐지 그렇게도 고생을 하고 싶구나.(어릴 때 많은 고생이 크면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는 교훈!) 자영이 오셨다. 이제 비누 공업도 포기하고 대구에서 유리 상점을 경영하겠다고! 도시로 가고 싶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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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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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석만이가 찾아 왔다. 과연 부럽잖게 공군이 되었다.이제는 대전에서 훈련(3달)을 다 마쳤고 9월까지 교육을 받는다고. 어제 저녁 마산에서 자고 10시에 왔던 것이다. 퍽 반가웠다. 여지껏 한 교실에서 더구나 동창생으로서 배우다가 이별한 이군이었다. 나와 진정한 친우였으니까! 점심을 같이 먹고 준수 집에 찾아갔다. 또 영웅 집에 가서 놀았다. 모두들 놀라는 것이다. 저녁은 자기 이모댁에서 먹었던 것이다. 저녁에 영웅 집에서 창길, 준수 다모여 우리 6인은 합의하여 정종과 과자를 사놓고 밤늦도록 놀았다. 이 동네에 기준이가 합령을 받았다고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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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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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일이다. 10시 경에 수료식을 올렸다. 통지서는 성적을 완료(채점 미완)치 못했다고 배부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 4월(四月)에 가서 등교할 때 전교생 모두 배부된다고! 우선 상장만 받게 되었다. 전교생에서 우등생 1명(한창원) 개근생 22명, 정근생 26명이었다. 그 중 나도 넌지시 개근이었다. 구마산에서 석만이를 만나 자시집에 여러 친우와 갔다. 놀다가 앞서 공, 이는 가고 박실이와 나는 남았다. 저녁을 먹고 석만, 실이와 같이 서점에 갔다. 동생책 5권을 샀다.(중학교 2학년용) 600환을 가지고 같이 강남극장에서 “젊은 표정”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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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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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저녁 얼마나 놀았던 건지 모두 늦게 일어났다. 깨고 보니 비는 내리고 이군과 이별의 시간이 더욱 다가온 셈이다. 이군댁에서 떡을 했는지라 나누어 먹었다. 우연히 마산에서 이군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는데 이것도 친우의 정이었는지!!! 3시차로 대전에 가게 되고 박실이와 나는 점심을 먹고 구마산에서 2시 차로 집에 왔다. 영치(중학교 동창)가 찾아 왔는데 부산대 음악과에 합격했다고!! 친우로서 반가웠다. 집에 오니 칠원에서 춘자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저녁에 돈 때문에 누님이 오셔서 2,000환을 보냈다. 아버님과 대산댁은 차용증서를 쓰러 갔다.(현 45,800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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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수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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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아침까지 내렸다. 빌려온 책(사랑과 성의 백과사전)을 기주(基柱) 집에 갔다 주었다. 집에서 청춘극장 제 2부를 읽었다. 내일 날씨가 좋으면 진해에 놀러 갈까? 봄놀이 구경 겸 꼭 놀러 오라고 정행, 정남이가 약도까지 적어주며 약속을 하고 왔는데 ! 아마 나의 생활은 극도에까지 이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도 하루의 일과에 의욕도 없고 어떤 야심조차 없으니! 이렇게 우습게 살다가, 굶어 죽는다는 그 악착스러운 생활에 부닥쳐서야 비로소 생활한다는 고난을 느끼겠지?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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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목요일. 비/개임
하루를 보내기도 이렇게 괴롭고 고달프고 봄비조차 그 아쉬움을 더욱 안타깝게 한것 같다. 네가 나에게 보낸 그 서신과 말과 웃음과 그리고 나보다 더 따사로운 그 정과 더불어 구원할 수 없는 슬픔을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 나는 아쉬움을 떠날 양 밖으로 나왔다. 편지(대산대전행)를 부치고 준수한테 찾아갔다. 그도 역시 마음의 상처는 아끼지 않는 친우다. 실이와 같이 영웅이네 집에 놀러 갔다. 어둠이 깃들고 밤이 이슥할 무렵 집을 찾아갔지만, 그윽한 그 어느 구석진 곳에 단 하나의 다정한 한 마디를 전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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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금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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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이다. 동무들과 꾸리짭짭한 장난도 하고 싶다. 이제 4월이라 각 학교의 입학식도 끼었고, 개학일도 닥쳐왔다. 정말 기쁘고 바쁜 이 달이다. 봄이라 꽃놀이도 흥겨울 것이지만 3학년 진급이라 마음도 긴장 되었다. 오랫동안 봄비가 내렸던 탓인지 날씨는 퍽 싸늘하고 바람도 새찼다. 신문 소식처럼 일선에 눈이 내렸다는 기이한 말들! 봄소식이 아니라 눈 소식을 전한 상 싶다. 오늘이 동아일보 40주년 기념일 이라고 본지 외에 한 장이 더 왔다. 오후엔 집에서 해가 지도록 여물을 쑤었다. 팔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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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토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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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로운 생활의 길을 개척할 힘을 길러야겠다. 그 언젠가 용기가 나를 편달하여 나아갈 하나의 추진력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 공상에 잠긴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저어갈 키의 방향을 잡지 못한채 허공에 뜬 인간이었다. 이 고독한 나의 일생에 대하여 마음의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었던 것이 오늘 이같이 나를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던가 보다. 금년에 군북 국민학교에 입학할 동생을 데리고 입학시키려 나갔다. 호적과 통지서를 납부하여 등록을 하였다. 올적엔 배부해주는 시목과 책표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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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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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책(청춘극장)을 가지고 영웅이네 집에 갔다. 나중에 11시 차로 함안에 놀러 갔다. 송형 집에 갔다가 박군 댁에 갔더니 성당에 간 것이 됐다. 조금 있다가 왔기에 점심을 먹고 같이 나왔다. 책에 관한 일로서 성병이와 당산에 갔다. 병연 댁에 가서 책을 받았다. 모순이 집에선 새 집을 짓느라고 몹시 바쁜 모양인지라 와버렸다.나중 용수를 만나 둑에 놀러 나왔다. 신축되는 공설 운동장을 닦느라고 야단이었다. 같이 용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원석이도 봤다. 저녁엔 같이 박군 집에 와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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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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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놀았다. 용수와 놀다가 법수로 보내고 오후에 위로 올라왔다. 성병이와 놀면서! 우연히 자기 형수께서 아파서 박군은 고생이 많았다. 나도 퍽 미안하게 된 셈이다. 같이 집으로 가려 했던 것이 박군의 형수로 인하여 할 수 없었다. 내일은 개학일이라 저녁 차로 집에 왔다. 집에선 병아리를 깐 모양이다. 광웅이가 놀러 왔다. 가져온 책(국사)은 학교서 애순께 전해 달라고! 자기는 15일에 입학(해인대학)이라고 했다. 또 섭섭했던 소식! 상권이가 입시(서울 상대 상학과)에 실패하고 군에 입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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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화요일. 맑음
 
학교에 나갔다. 10시 경에 개학식을 하고 내일의 수업(물리, 국어, 음악)과 반 편성과 전달사항 등! 상모를 만나 2시 차로 오면서 이야기를! 정치대학에 합격은 했으나 납부금으로 因(인)하여 진학을 못한다는 딱한 사정! 오늘이 청명이고 내일이 한식인데, 관상대에서 정확히 일자 계산 하에 오늘같이 두 절기가 겸한다고 한다는 신문의 보도다. 진나라 개자추가 국왕이 충성을 몰라준다는 이유로 산에 숨었는데, 왕이 불렀으나 듣지 않아 산에 불을 질러 개자추가 타 죽은 결과에서 매년 오늘을 불을 금하고 찬 음식으로써 개자추의 충성스러운 혼을 위로하는 것이 한식의 유래라는 전설인 모양이다. 늦게 까지 광웅 집에서 놀다가 영어, 국어(3학년용)을 빌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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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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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진학반 수업은 마지막이었다. 물리를 마치고, 음악에서는 “달밤” 곡을 배웠다. 마치고 반편성을 보았더니 방직과 32번이었다. 불우한 감정이 들고 어쩐지 서운하고 몹시 초조하다. 아마 나의 운명이겠지? 교내에 팔려온 책 “학창의 꽃”, “태양은 또다시 뜬다” 두 권을 800환에 샀다. 내일은 입학식이고 4월분 승차는 8명 신청이었다. 오후 시내에서 성병이가 시계를 3500환에 샀는데 600환을 차용해주었다. 윤근이도 본래의 것과 바꾸었는데 1500환 더 준 셈이 됐다. 오군은 나와 같은 학적이라 서로가 오면서 기념이 많았는데(빵집에서!), 오늘은 오군의 자취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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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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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입학식이다. 차간에서 철권이와 같이 오면서 용수를 만났다. 부탁한 3학년 교과서 어법(no.10)과 대화와 국어책들을 받았다.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기로 하고 북마산에서 헤어졌다. 직장은 남전으로 갈 모양이다. 철권이는 취직을 했는데 이달부터 약 1만 9천환 된다고! 10시 경에 입학식을 했다(신입생 231명). 그리고 신입생의 통학을 조사하였고 재학생 13명이 승차권을 역에 신청하였다.(12560환). 모두들 윤근이네 집에서 놀다가 2시 차에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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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토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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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정기권을 나누어 주고, 2차 승차권 신청도 했다. 국사, 세계사, 회화 수업이었다. 새학기인 탓인지 학과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이래저래 시간을 넘기는 것이었다. 아직도 신학과 담당擔當 선생님도 정해져 있지 않은 까닭이였더니 하는 모양이다. 순명이로부터 석만이의 책(베니스의 상인)을 받았다. 집에 오니 마산 할머님께서 오셨다가 가셨고 고향에서도 손님이 오셨었다. 대산외가에서 편지가 왔었는데 외조모의 모친께서 이번에 별세하셨다는 통지와 외조모께서 가셨다는 것이었다. 종일 개이더니 저녁엔 드디어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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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일요일. 흐림/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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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가까이에 아무도 없음을 느낀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하고 또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그를 부르기도 싫고, 내 자신이 가난하고 너무나 고달픈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 스스로 괴로움을 참고 외로움을 금했다. 물론 그는 너무나 사치가 강함을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애정을 끊어버렸다. 어둠의 세계를 더 높이 알고 진실의 세계를 찾는 이 심정이 포근해질 수 있는 것일지?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존재다. 아직도 되어 보지 못한 순정! 진실로 나는 철없는 존재였다. 아니 헛되이 하는 생활을 싫어했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기도 싫어했고 남에게 용기를 주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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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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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즉 말하자면 교사 이동 문제다. 현 생물(박돈조), 물리(김문현) 양 선생님을 보내고 신임 두 분을 모신다는 것과 교감 선생은 중앙중학교로 가시고 중학교 정기철 교감선생님은 본교 서무과장으로 모시고 주사 이열재 선생님은 물러가신다는 아침조회의 교장선생의 담화가 있었다. 먼저 말한 논쟁은 생물 선생님은 두도록 하자는 게 학생의 의견이었다. 조회를 마치고 2,3 학년생은 운동장에서 항의한 셈이다. 이렇게 사제간의 갈등은 더 한층 반발하고! 그러나 발전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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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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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학생을! 우리에게 기회가 왔던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쁘고 반갑고 애통한 일이었던가? 데모! 데모! 대규모의 데모를 했던 것이다. 어제 5시부터 연행된 소요로 인하여 우리는 학교에서 학업을 중지하고 9시 50분에 교문을 나와 시내행진을 하여 정의의 구호를 외치며 3시간 35분간이나 데모를 한 셈이다. 그 플랜카드를 들고서 얼마나 목이 쉬었는지? 시민의 박수와 떠다 주는 물로써! 오후엔 시내 각(各) 학교가 일어났다! 정부는 이래서 재선거를 하지 않겠는가? 저녁에 광웅, 용수, 기주가 놀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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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수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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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주임을 만났는데 휴일이라고 학생을 돌려 보내라고!! 어제 공고가 선두에서 1만군중과 합세했다고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정말 명예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나에게 퍽 반가운 날이었다. 장학생 선발 응시 자격증을 받았다. 현 장학생은 제외하고 한 반에 10명씩 추천되는 것인데 그 중 나도 한 몸이었다. 응시하러 갈 적에 응시자에게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추천은 받았는데 다음 시험에 장학생에 합격이 되어야 할텐데!!! 오늘 오후 해인대학, 여학교에서 역시 대규모의 데모가 일어났다. (어제 저녁엔 시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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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목요일. 맑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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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발하는 데모로 인하여 15일까지 휴일이다. 오늘 중리에서 수영, 부길, 영일이가 찾아왔다. 전하고 들은 바 내일 함안에 데모가 있다는 것으로 이웃 이씨까지 오셨다. 피로써 찾은 자유를 총칼로서 빼앗길 손가? 이 미친 경찰놈들아! 우리 민주주의를 위한 데모를 방해말라!! 저녁에 고교생들에게 전달하였다. 밤늦게 학우들과 집에 왔다. 집에선 어미 소를 팔고 황송아지와 조금 작은 소를 사셨다.(4000환을 같이 포함) 한 마리 소를 팔고 작은 두마리를 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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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금요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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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데모에 가담하려고 임, 최, 황군과 역으로 나왔다. 아침을 늦게 먹었던 탓인지 첫 차를 놓치고 급행으로 가려고 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걸어서 함안에 갔다. 가히 거물 같이 둘러 싼 경찰로 인하여 도저히 장내에 가지를 못하게 되었다. 시준이를 만났다. 학생은 도저히 갈 수 없었고 데모도 불가능하였다. 동무들은 중리로 보내기로 했다. 가야까지 탔을 때 경찰에게 들켜 동래로 숨어 숨어 몸을 감추었으나 잘못했으면 잡힐 뻔 했다. 오늘의 일은 도저히 이루질 못하겠는지라 서로 마산, 군북, 중리로 헤어지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함안에서 아버님은 늦게 오셨다. 민주당원 7명과 같이 두번의 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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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토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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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나오니 마산시내 각각의 중고등학교의 휴일이 2일간 더 연장되었다고 각 역으로 전화가 왔다고!!!! 정부당국에서 마산사건을 조사하려고 내려온지라 경찰들은 “데모”로 인하여 강경책을 하느라고!! 빌어먹을 놈들 통행금지위반자라고 125명이나 연행하다니! 왜이? 미친 놈들아. 반성은 하지 않겠느냐? 성병이와 재구와 같이 윤근 집에서 놀았다. 나는 나중에 상남 할머님 집에 갔다. 역 앞 장에 가서 목욕을 하고 막차를 탔다. 철권이를 만났는데 며칠 더 있다가 대구 직장으로 옮긴다고!! 집에 오니 영산농고로 전학 간 친구(이군)의 편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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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일요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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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으로 가는 길호군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는 내 자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이 엄청난 그늘 앞에서 나는 점점 친구와 먼 거리였고 결국엔 나 혼자 이 빈궁 속에 자족할 수 없어 절망(하고 말 것 같았다. 한 번 방문하라기에 여가를 이용하여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날이 내 생활이 악착스러운 주름에서 나의 슬픈 사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 나는 내 나이를 밉살스럽게 걱정하는 바다. 이 때문에 나는 어떠한 육체의 고통이 오는 노동까지 가질 수 없음을 느낀다. 현실적으로 사는 힘을 얻는 하나의 방법을 지금의 나로서는 구해낼 도리가 없고 용기도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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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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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가 우연히 급병으로 인하여 첫차로 마산에 와서 아이로루를 같이 타고 시민외과의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새 친구로서 우울감을 느낀다. 약한 신체는 아닌데 너무 술과 신경의 고통과 예민한 생각에서 온 병의 운명이 아니었는지? 나중 학교서 전화로서 구포에 계신 자기 부친도 오셨고 또 병명도 모르며 급병이라고! 무어라 해도 건강한 몸이 제일이지. 수업은 정해진 바에 따라 기하, 물리(신임 홍인표 교사)를 했다. 방직과 학생의 수가 많아 두 교실을 합하여 이동했다. 그리고 장학시험신청에서는 32번(고사번호)이었다. 막차로 오면서 막권이를 만났는데 고성에서 왔다는 것과 재수 병을 듣고 안타까워 하는 심정! 집에 오니 아버님 외조부 제사라고 12시 경에 대산에 가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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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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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대로로 수업을 했다. 내일은 장학생 선발 시험이 있는 지라 여지껏 열심히는 했지만 내일 하루 일과의 운명만 기다릴 뿐이다. 시민외과에 재수의 간호를 하러 왔다. 좀 회복된 모양이다. 퇴원은 미정이라고!! 2층 11호실이었다. 어제는 고려대학생 3000명이 서울에서 데모를 했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서울 대학 및 각 대학이 일어났다고 시내는 떠들썩했다. 그들의 구호가 마산 학생 석방 및 책임을 지라는 것과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니! 정말 세상은 한 번 ㅇㅇ되리라 믿는다. 이렇게 했는데도 정부당국은 반성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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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수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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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운명의 날이다. 오늘 시험으로써 장학생이 되느냐? 안 되느냐? 33600환의 금액이 오고 가는 것이다. 누구나 장학생이 되고 또 되기 위해서 나도 머칠간 밤을 새우기도 했던 것이 아닌가? 모두가 공부벌레가 된듯 하다. 역에 내려 부탁때문에 호길, 성병이와 시민외과 재수를 방문하러 갔다. 전보다 몸이 좀 회복되었다고!! 국어·수학·영어·사생·과학(500점)과들을 응시했다. 어제 서울 데모로 인해 계엄령이 선포된 관계로 월요일에 등교! 정행이와 송변 하숙소에 놀러갔다가 자기 탁자를 사러 시내에 갔다. 재수는 퇴원했다고 막차로 왔다. 대산외가에 가셨던 아버님께서 중리에서 오셨다. 열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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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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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무위도식에 충실한 인간이 되고 만 것 같다. 내 갈 길이 이렇게도 막연하니 나는 정말 낙오되었다. 모든 이상이 뒤섞어 사념이 끊어져 헝클어지고! 쇼팽 전을 읽으면서도 너무 잡연한 것 같이 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쇼팽’의 세계만이 그립다. 그리고 다만 고전의 탐독에 바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지금 일기를 쓰는 이 시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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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금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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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는 왜 이렇게도 시를 좋아했을까? 시를 쓰고 싶으면서도 시는 쓸 줄 모르며 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나는 무능의 극에 도달하고 만 것 같다. 사랑은 아득히 멀구나! 그림자마저 잡을 길이 없는 여가이었나 보다. 나를 불러 그리로 가게 할 사람의 길도 이제는 지나버렸다. 순한 사랑. 죽음을 넘고 생과 바꿀 수도 있는 사랑! 불순한 현실의 잡속에서 살아가고 부대끼는 까닭에 더 한층 높고 순한, 사랑을 찾을 것도 같것만 그러한 기대! 아니 일종의 기적적 동경도 이제는 여지없이 지나가버렸다. 편지! 이런 것도 귀찮았다. 실로 정의 실머리가 맺히고 엉키고 한 그런 편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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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토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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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자형께서 대구에 가신다고 빌린 돈을 가지고 오전에 봉남에서 자형의 어머니께서 오셨다. 또 고향(일암)에서 재규(在奎) 아제께서 오셨다. 이래서 역에 가서 남문산 아제께(조역) 전화를 걸었다. 오늘 개양으로 출장을 왔으며 내일은 반성에 간다고 하셨다. 재규 아제께서도 내일 반성에서 만나실 모양!! 아버님과 같이 들로 놀러 나가셨다. 나는 동생의 부위원장 입후보에 관한 프린트가 있었다. 광웅이와 실이가 놀러 왔는데 실이는 “베니스의 상인”, “소정시집” 책 두 권을 가져갔다. 나중 아제와 역에서 개양으로 전화를 상담했고 저녁에 족보책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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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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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차로 재구 아제께서 가신다고 짐(전에 아버님께서 양촌에서 씨나락 종자를 바꾸던 집의 종자)을 가지고 역에 나오셨다. 반성에서 내려서 재호 아제를 만나 보시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장날이라 대산 소 장수 아제께서 오셨다. 이제 일년도 채 남지 않은 학창시절을 더듬는다. 머지않아 사회에 발을 놓게 될 것을 생각할 때 주저한 감이 있고, 망설여진다. 어쨌든, 배우고 노력하고! 꾸준히 공부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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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월요일.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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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일간 놀다 등교일이라 첫 차로 왔다. 당국 지시에 의하여 무기한 휴가로 연장 되었다고! 모든 학우들은 책보를 들고 나왔지만! 다음 신문 라디오를 통하여 전한다는 것. 시내의 각 중고대학교가 또 오늘부터 휴일이라!!! 집에서 가져온 파, 마늘(작은집에서)을 가지고 상남 할머님 댁에 갔다. 어제 마산서 “책임지고 물러가라. 갈아치울 때는 왔다”라는 플랜카드를 들고서 노인들이 데모했다는 것! 이렇게 해도 정부는 재선거를 하지 않으려는가? 썩고 부패된 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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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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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도 살랑한 날. 호수의 잔물결로 미루는 날. 들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고. 나 홀로 헤매는 이 날엔 눈물도 웃음도 모두가 잠들다. 그윽한 저 어느 구석진 곳에 단 하나의 정다운 말소리! 두고두고 기다리는 말소리는 어질다. 오늘도 들릴 일은 없고 봄바람에 날려 보내고 말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서리어진 한이 이리도 내 마음을 괴롭히는가! 며칠을 두고 가도 올 길 없는 그리움이 겨울이 가고 벌써 봄이 왔고 또 왔는데! 봄과 더불어 꽃 필 줄도 모르나니 아서라 그날 그때 그사람도 사라져 가거라! 봄바람에 날아도 가버려라!! 이제는 늦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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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수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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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산사건이 가슴을 찌른지 40일이나 지났는데, 4.18 시위로써 고루한 학도의 애국정열이 전국을 흔든지 9일 만에 12년간 권력에 의해서 짓밟힌 주권을 어제 오전 10시 반에 발표된 이 대통령 하야 성명으로서 드디어 소생하였다. 아니, 빼앗겼던 민권을 찾아왔다. 민권이 비로소 탄생된 셈이다. 8.15 해방의 기쁨이다. 우리의 학우의 피흘린 대가는 승리했다. 독립정부수립은 불과 3년만에 6.25 난리를 당했었고! 전쟁 후 오늘날까지 권력때문에 허리를 못 펴고 머리를 못 들고 짓밟힌 생명이 아니었던가? 자유여! 학원에도 오라! 학도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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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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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고 없는 사람! 있었더라도 믿기 어려웠던 사람! 마음의 상처를 아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에 대한 노력과 상념이 현실함에 무색함을 또 보고 겪었고, 또 보고 느꼈던 내가 이 허망한 심경에 사로잡힘도 어찌 약한 한 사내의 허물로만 돌릴 길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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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금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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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즉 자극이 없는 생활은 발견이 없을 것이다. 호화로운 가정일수록 주의에서 오는 고난, 자극이 적을 것이고 자극이 적을수록 남에게 떨어지기 쉽다. 옛날부터 빈곤한 가정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는 상 싶다. 다시 말하면 환경이 주는 자극은 사람을 두 길로 이끄는 것 같다. 자극으로 인하여 분발하는 경우와 자포자기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 아닐까? 나도 모처럼 거리를 거닐고 돌아오면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지고 때로는 세상이 허무한 것 같다. 사랑방에 정호구 씨가 저녁에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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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토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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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들은 다 청산한 셈이다. 오늘부터 등교였다. 아직 마을에는 전달이 못 된 탓인지 통학생도 몇몇이었다. 그 지리한 휴일은 이제 다 지나고 앞으로는 학업이 계속된다. 민주주의를 위하다가 죽은 학생! 싸우다가 죽은 본교 강(융기)군의 명복을 빌면서 오늘의 우리가 주권을 찾은 기쁨에서 식을 하였다. 식을 마치고 신임 생물선생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군중 2학년에 다니는 동생이 운영위원회선거에서 부위원장에 당선되었다는 기쁨! 내일 나의 생일이라고 집에서 떡을 하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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